안녕하세요, 조상지입니다.
오늘은 4월 20일, 자랑스러운 장애인차별철폐투쟁의 날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자랑스러운 날, 자랑스러운 동지들과 함께 서울시의원 종로구 제2선거구 출마를 선언합니다.
저는 쉽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몸으로 살아왔습니다.
조금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큰 힘을 써야 하고, 그 힘조차 늘 내 마음대로 쉽게 조절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온몸에 힘을 주고, 땀을 흘리고, 경직되는 몸을 견디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외치며 출근길 지하철 바닥에서 포체투지를 하던 날도 그랬습니다.
온몸으로 바닥을 밀며 지하철 앞머리를 향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땀으로 젖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나 더웠던 것은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제가 써야 했던 힘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죽어라 땀을 흘리며 가고 있었는데, 도시는 너무나 차가웠습니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차가운 도시의 얼굴들이 저를 바라보거나, 지나치거나, 못 본 척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포체투지할 때만 이 도시가 차가운 얼굴을 지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설에 있을 때의 4월 20일을 떠올려봅니다.
시설에서는 장애인의날 딱 하루, 외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마저도 시설에서 차를 타고 10분이면 가는 곳이었습니다. 시설은 그걸 봄소풍이라 불렀습니다.
4월은 분명 완연한 봄이어야 하는데, 매년 그날의 강바람은 몹시 차가웠습니다.
인적 없는 강변에 내려, 누구 눈에 띌까 봐 밥과 국과 반찬을 한데 섞은 것을 종사자들이 급히 우리 입에 밀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겨우 다 삼켜내고 나면, 곧장 다시 차에 태워 시설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차라리 안 나가고 싶었습니다.
그때의 4월 20일은 바깥으로 나온 하루가 아니라, 시설 바깥에서도 끝내 장애인을 숨기고 귀찮아하던 하루였습니다.
기어코 시설에서 살아남아 자립한 뒤 마주한 서울도 늘 그랬습니다.
저는 늘, 쉽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몸으로 이 도시를 거슬러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멈춘다는 것은 이 도시가 만들어낸 저항에 떠밀려 자꾸만 뒤로, 나중으로, 지역사회 밖으로 밀려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밀려나지 않기 위해 버티고, 배우고, 싸우다 저는 4월 20일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시설 안에서의 4월 20일이 차갑고 숨 막히는 기억이었다면, 탈시설 이후 거리에서 맞이한 4월 20일은 전혀 다른 날이었습니다.
내내 차갑기만 하던 도시가 처음으로 뜨겁게 느껴졌습니다.
나와 같은 열을 내며, 차가운 도시에 맞서고 있는 동지들이 있었습니다.
함께 구호를 외치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웃고 울고, 함께 버티며, 차가운 도시를 뜨겁게 바꾸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4월 20일이 불쌍한 장애인을 부끄럽고 귀찮게 여기는 날이 아니라, 배제당해온 장애인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선언하는 날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4월 20일을 떠올리면, 이 이름들을 떠올립니다.
최옥란.
박김영희.
박명애.
이형숙.
저는 이 이름들을 부를 때마다, 내내 차가운 표정만 지어왔던 도시와는 전혀 다른 얼굴도 떠올립니다.
기초생활수급자로서, 장애여성으로서 가난과 차별의 한복판을 온몸으로 건너며 싸운 최옥란의 얼굴,
장애여성운동과 장애인차별철폐운동 사이를 가르지 않고 끝내 이어내며 길을 넓혀온 박김영희의 얼굴,
오랫동안 집 안에 머물다 야학으로 나와 마침내 자기 삶의 주인이자 투쟁의 주체가 된 박명애의 얼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권익옹호라고 외치며 온몸으로 차별과 배제의 벽을 돌파해온 이형숙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그 얼굴들은 도시가 우리에게 강요해온 얼굴과 달랐습니다.
숨기고, 참고, 작아지고, 미안해하는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열을 내고 애를 쓰느라 일그러진 얼굴,
분에 터져 울고 눈물이 그렁그렁해도 이를 악물고 끝내 포기하지 않는 얼굴,
쓰러질 듯하면서도 다시 몸을 일으켜 앞으로 나아가는 얼굴,
그러다가도 누구보다 다정하게 동지의 안부를 묻는 얼굴이었습니다.
저는 그 얼굴들을 보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탈시설도, 자립도, 배움도, 투쟁도, 정치도 그 얼굴들을 보며 배웠습니다.
나는 어떤 얼굴로 살아야 할까.
이 도시는 어떤 얼굴을 마주해야 할까.
그리고 이 도시는 대체 어떤 얼굴을 가져야 할까.
저는 그 질문을 붙들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서울에서 장애인은 쉽게 얼굴을 잃습니다.
이름 대신 시설의 한 자리로, 점수표의 한 칸으로, 관리의 대상으로 지워지기 쉽습니다.
서울이 장애인에게 내민 얼굴은 환대의 얼굴이 아니라, 외면의 얼굴, 지연의 얼굴, 배제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런 얼굴로 서울의 정치는 장애인의 앞에 나타나서 탈시설의 권리를 지우고, 장애인의 노동을 빼앗고, 이동과 자립의 권리를 나중으로 미루며 장애인을, 장애인의 권리를, 장애인의 자리를 뒤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서울은 동행을 말해왔지만, 장애인에게는 너무 자주 약탈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출마합니다.
더 이상 서울이 우리의 얼굴을 빼앗아가는 정치, 우리를 뒤로 밀어내는 정치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이 도시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버티며 싸워온 시간들을 서울시의회 안으로 밀고 들어가겠습니다.
권리중심일자리에서 해고된 최중증장애인 노동자들, 아직도 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장애인들, 필요한 만큼의 지원을 받지 못해 삶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 장애인들, 이동하지 못해 교육받지도, 노동하지도, 시설을 벗어나지도, 자립하지도 못한 장애인들의 민주주의를 서울정치의 중심에 놓겠습니다.
저 조상지, 출마합니다.
시민 여러분,
뒤로 밀려나던 장애인이 이제 서울을 앞으로 밀고 가겠습니다.
쉽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몸들도 끝내 시민으로 등장할 수 있는 서울,
더 이상 장애인이 얼굴을 잃고 이름을 잃은 채 뒤로 밀려나지 않는 서울을 위해 함께해주십시오.